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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백성민.
내가 처음 백시인의 이름을 접하고도, 지금껏 오랫동안 얼굴을 마주하고도 항상 이름에서 백성‘民’자가 연상되는 것이 나만의 생각일지 모른다.때론 단호하고 때론 절규하고, 때론 명료한 평상시의 그의 육성이 시에 그대로 나타나기도 하니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현대를 위기의 시대라 한다면 그것은 현대문명이 가져다 주는 빛의 크기가, 지금까지 인류사나 문명사 속에서 최고의 수준인 만큼 그것이 동반한 어둠의 크기도 최고의 수준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에서도 진정성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진정성이란 문학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정신의식의 심화 총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백시인은 고뇌하고 가슴앓이를 하는 진정한, 한 사람의 시인일 것이다
삶의 기쁨을 통해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비애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최소한의 지상에서의 위안을 얻으려는 그의 안간힘이 보인다. 주변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을, 소외되고 가려진 부분들을 자주 조명하고 있음을 볼 때 백시인은 노동자의 대변인쯤 비길만한 사람이다.
그의 시는 '공씨의 하루''백정''꿈꾸는 바다'등을 보면 노동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기야 사는 것 자체가 노동이라면 ,우리의 삶의 모두가 노동이 되는 셈이다.
노동의 뒤편에 자리한 고루함, 고통, 울분, 절망을 찾아내는 그는 스스로도 노동자라고 한다.
삐걱거리는 손수레에 끌려나오는 골목길
어젯밤 쌓아두었던 서툰 꿈들이 툴툴거리고
혹여 부지런한 마음들은 알까
날마다 버려지는 *산 61-4*의 비명 소리를?
-공씨의 하루 중에서-
시장 길을 들어서면
올망졸망한 생선좌판 사이로
비웃한 열기가 묻어난다.
동태 궤짝과 고등어 궤짝을 태워
지펴지는 불꽃 옆에
언 고등어와 동태가 곁불을 쬔다.
동결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본능은
언 몸을 녹여 바다로 향하고
꿈꾸던 바다는
무딘 칼날 아래 잘려진다.
-꿈꾸는 바다. 중에서-
나는 백시인의 눈을 생각할 면, 어릴 때 할아버지 집에서 키우시던 송아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 서글한 눈빛에는 아무도 그에게 거짓말을 못하게 하는 위력이 있다.그는 개인적인 일에는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을 피력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장을 한다는 말도 아니다. 크게 살든 작게 살든 누구에게라도 그 무엇이 되면서 산다는 것이 자기 실천의 과정에서 동떨어 진 것 같은 나날이 그를 슬프게 하는 것 같다.
살아남아야 하는 단 한순간의 서툰 욕망 앞에
두개로 갈라진 발굽은 얼마나 단단하게 버티고 싶었던 生의 두터움인지
고랑과 들판마다 채워진 따뜻한 입김과 등덜미마다 느껴지던
싸리나무가지의 매서움은 몇 대를 이어서도 끊이지 않는 살육의 피로 흐르고
스스로 잘라버리고 싶은 어젯밤의 가는 숨결은 오늘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선지 국 한 그릇을 맛나게 비워
-'백정' 중에서-
그의 시에서 종종 나타나는 죄 많은 어머니는, 자신 원죄의 근원지로 나타난다. 그의 어머니에 죄의식을 크게 그리고 죄의식이 클수록 그의 삶은 개선 되거나 희망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반대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 절망적 현실인식이 그의 시인됨을 강렬하게 할 수 있을텐데 그것이 어머니의 죄를 탕감해줄 무능한 자신의 죄를 어머니의 죄로 돌린다.
어머니의 죄로 인해, 대물림의 죄를 비화적으로 치부하는 것은 곧 빈곤의 악순환으로 볼 수 있다. '어머님'이란 시에서 보면 반대로 어머님에 대한 연민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자학적인 자기연민에 글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백정,‘’몰락‘이란 글에서 보듯이 우리 민족과 오래 삶을 같이 해온 동물이 등장한다.
그가 즐겨 찾는 소재가 역시 백시인의 가치관처럼 우리민족의 삶의 토대와 그 위에 이루어진 민족적 서정성의 것을 고집하고 있다.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며 나를 견디게 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라는 일념으로 다시 말하자면 영혼과 욕망의 갈등에서 영혼이 승리하리라는 믿으며 사는 시인은 거대한 힘이나 권력의 체계 에서 개인의 양심이나 비판적 진실의 정서적 호소는 유약할지 모르나
시간의 단위를 표용 하면 서도 어떻게든 그 것을 넘어가며,현실과 영원사이의 균형을 유지해보자는 생명체의 간절한 욕망을 나타내 보자고 절실하게 외치고 있다.
백시인은 글처럼 위장된 글을 보면 금세 깊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런 성품으로 하여 그를 굳게 믿고 따르는 많은 후배 시인들의 버팀목 노릇을 할 수 있는가 보다.
석 달 열흘을 밤을 새워 보기도 좋은 탈 이백 아흔 아홉 개를 만들었다
그 모양모양 생김새가 웃음으로 가득하고 보기 아니 좋을 손가?
습지고 어두운 골방 속에서는 아프다 서럽다 말도 많더니 해살 아래
널어보니 모두가 웃는 얼굴이다.
-탈 전문-
백시인은 오늘의 시인들이 걸어가야 하는 길은 알고 투박하지만, 묵묵히 진흙탕 길을 걸어가는 한 마리의 황소다. 그의 “탈‘에서 보는 바램처럼 생활의 탈을 쓰고 살더라도 햇살아래 이백 아흔 아홉 개의 탈들이 모두 웃을 수 있는 그 날을 약속해 줄 그런 사람이 바로 시인 백성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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